“지금, 예수님을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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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처음으로 부르신 장면입니다. ‘게네사렛 호수’는 ‘갈릴리 바다’를 말하는 또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근처에 배가 두 척 있었고 어부들은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두 배 중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물을 씻는 베드로의 배에 오르십니다. 육지에 있는 무리들에게 가르칠 수 있도록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도록 부탁하십니다. 게네사렛 호수가에 경사면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으면, 예수님은 배위에 오르셔서 말씀을 전하실 때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말씀이 청중들에게 잘 전달되었습니다.(사진-게네사렛 호수가)
갑자기 왜 베드로의 배를 타셨을까요?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요청에 배를 띄웠을까요?
성경을 자세히 읽으신 분이면 아시겠지만, 오늘 베드로는 예수님을 처음 만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배에 올라타신 것도 처음 만난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신 것도 아닙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원래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는 세례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되었고, 그 안드레가 자신의 형제인 베드로에게도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 방문하셨고, 베드로의 장모의 중한 열병을 고쳐주신 일도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존경하고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대한 선생님으로 알고는 있지만, 그분의 능력을 존경하며 바라보고 있었지만, 전적으로 따르지는 못했습니다. 여전히 자신의 생계인 물고기 잡는 어부의 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을 마치시고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물고기를 잡으라고 명하십니다. 시몬의 대답은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내 힘으로 빈 그물을 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장 전문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참담한 무능이 드러났을 때 우리는 한계를 인정하게 됩니다. 오늘 베드로가 바로 그런 상태입니다.
베드로와 동료들은 밤새도록 한 숨도 못자고 일했기 때문에 지치고 피곤했습니다. 그러나 밤을 지새운 수고의 대가는 피곤뿐, 생선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실패와 좌절감이 몰려왔지만 오늘 밤에도 다시 또 일을 나가야 하기에 그물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을 따릅니다. 결과는 물고기가 그물이 찢어지도록 가득 차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예수님의 초월적 능력을 경험하고 나서, 그분의 부르심에 온전히 따르는 제자가 됩니다.
1. 예수님만이 우리의 인생을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1. 예수님만이 우리의 인생을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전제 할 것이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빈 그물을 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만난 시간은 이른 아침일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5절에 밤새 일했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는 아침일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베드로는 밤새도록 일을 했지만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몸은 천근만근이데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어려움이 무엇입니까? 정당한 노동의 수고와 대가를 인정받아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데 오는 허탈감이 우리의 어려움 아닙니까?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은 더해 갑니다. 특히 소상공인이나 프리랜서들의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 일감이 없습니다. 하루 종일 가게 문을 열어도 손님이 없습니다. 노력의 대가와 수고가 피곤과 좌절일 뿐, 빈손입니다.
하루 종일 노동을 했다면 그것에 합당한 일당을 받는 것이 공정합니다. 그러면 몸은 아무리 무거워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행복합니다. 몸은 힘들지만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지갑에 돈이 있고 양손에는 자녀들에게 줄 간식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베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어부였던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물고기를 잡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빈손이었습니다. 천근만근의 몸보다 더 무겁고 힘든 것은 그 안에 마음이었습니다. 그물을 정리하고 집으로 복귀를 준비하는 베드로는 무척 지쳐있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오늘날 우리 인생의 문제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 인생을 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고 갈수록 지치고 지쳐가는 것이 우리 현대인들의 삶인 것입니다. 이걸 인정하셔야 합니다. 밤이 새도록 수고해도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의 그물을 채울 수 없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인간의 욕망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쇼핑으로 채워보려고 노력합니다. 아무리 많이 쇼핑을 한다 해도 우리는 스스로 만족할만한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최신 명품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지난주에 나누었던 ‘예수님에게 했던 마귀의 시험’에서도 인간의 본성인 탐욕을 가지고 유혹합니다. 마귀가 순식간에 높은 곳에 이끌고 가서 천하만국을 보여주면서 유혹합니다.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세상 모든 것을 향한 욕심을 자극하여 마귀는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은 얼마나 탐욕에 연약한 존재들이겠습니까?
요즘 동학개미운동이라고 들어보셨죠. 주식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너도 나도 주식을 사 모으고 있습니다. 주식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에요. 경제성장을 위해 건강한 기업에 투자하여 선순환을 일으키고 또 그에 합당한 배당금을 받는 것은 국가경제나 가계 경제에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영끌’이라고 하죠. 영혼까지 끌어 모아 여기저기서 빚을 내고 큰 위험을 감수하며 무리하게 주식에 투자하다가 큰 낭패를 보기도 합니다. 그것은 투자가 아닌, 탐욕에 근거한 투기입니다.
탐욕은 끝이 없어서 마치 ‘타는 갈증에 마시는 바닷물’처럼 가져도가져도 더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우리는 욕망에 이끌리어 살아가지만 결국 그 무엇도 우리의 욕망을 채울 수 없습니다. 탐욕은 더 커져갈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인정하고 고백해야 할 것, 내 힘으로는 내 인생의 그물을 절대 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채워주실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이시죠.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빈 곳을 채우시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베드로의 빈 그물을 물고기로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예수님에 사역이 메마른 인생을 가득 채우심을 보여주십니다.
요한복음 2장에 기록된 가나의 혼인잔치를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었던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건입니다. 당시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 큰 실례였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무엇이었습니까? 항아리 여섯 통에 물을 꽉 채우라고 지시하시고 그 다음 그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도 맛 좋은 최상품의 포도주로 채우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물로 그녀의 삶의 갈증을 채워주셨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굶주림과 배고픔을 보리떡과 물고기로 채워주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이 예배 가운데에도 모든 것이 비워져 텅 빈 인생을 경험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지친 우리의 삶 가운데 찾아와 우리의 내면을 채우시기 원하십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우리의 인생임을 고백하고 주님께 온전히 맡기시기 바랍니다.
우리 삶을 놀라운 기적으로 채우실 예수님을 만나시는 예배자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2. 믿음은 순종입니다.
2. 믿음은 순종입니다.
믿음은 나의 경험이나 능력보다 주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믿음은 나의 경험이나 능력보다 주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여러분, 베드로의 입장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밤새도록 일하고 이제 육지로 돌아와서 그물을 씻고 있는데, 다시 그물을 내리라니요.
게다가 물고기는 아침이나 낮에는 수심이 얕은 쪽으로 이동하고 밤이 되어야 깊은 쪽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아침에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물고기가 그물을 볼 수 있는 낮에는 물고기 잡기가 어렵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물을 내리는 것은 베드로의 전문분야입니다. 그런 그가 물고기가 잘 잡히는 밤에도 헛수고를 했는데, 낮에 물고기를 잡는 것은 쓸데없는 짓임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전직 목수였습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목수나 했던 양반이 물고기에 대해 뭘 안다고, 하시던 말씀이나 잘 전하세요!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물을 내리겠다고 말합니다. 5절입니다.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베드로는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여러분, 그랬더니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6절의 말씀입니다.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엄청난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믿음은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순종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합니다.
우리가 처음 가는 장소로 여행하게 되면 가는 길을 모르고 찾아 가게 됩니다. 처음 가는 길이기 때문에 그 길을 전혀 모르지만, 쉽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뭐만 있으면 되죠? 바로 네비게이션입니다. 지금은 과학이 발달해서 아무리 처음 가는 곳이라도 쉽게 찾아갑니다.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그것만 믿고 따라 갑니다. 우리는 네비게이션을 따라가는 동안 이 길이 과연 맞을까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네비만 믿고 간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에 대한 중요한 원리를 오늘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곳을 찾아갈 때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을 알고 갑니까? 아니면 믿고 갑니까?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그냥, 믿고 가는 것입니다.
그 네비게이션의 안내가 맞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대로 네비게이션을 따라 갔더니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르지만, 오직 믿고 가지만 다음부터는 길을 믿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알고 가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기 때문에 믿음이 생긴 것이 아니라, 믿음 때문에 이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해가 되었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믿음으로 순종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된 것입니다. 결국 아, 하나님께서 이러한 기적을 나에게 보여주시려고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구나라고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순종이 없으면 기적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진짜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갈릴리 바다에 물고기 수백만 마리를 풀어 놓아서 한곳에 모이라고 명령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그물을 던지지 않으면 작은 물고기 한 마리도 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주위에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지 못하면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믿음은 새로운 세상, 새로운 관점, 새로운 삶의 경험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에 의지하여’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잘 살펴보세요.
말씀에 의지한다는 것은 우리의 경험이나, 생각, 지식, 처한 상황과는 아무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은 순종입니다. 베드로에 배를 탄 예수님께서 수많은 무리들에게 전하시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말씀은 다만 바람을 타고 전달되는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겸손히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 말씀은 능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습니다. 내일 성경을 일고 큐티책으로 묵상을 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그저 소리로 들린다면 아무런 능력도 은혜도 경험하지 못합니다. 말씀에 청종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베드로처럼,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는 모든 예배자들 되시길 간절히 축복합니다.
3. 주님의 부르심에 반응한다.
3. 주님의 부르심에 반응한다.
베드로는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나와 상관없는 분이 아니라 내 인생의 필요를 채우실 수 있는 분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저 좋은 가르침을 주는 선생님, 선지자가 아니라 나의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하실 주님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립니다. 예수님의 대한 호칭이 5절 ‘선생님’에서 ‘주님’으로 바뀝니다. 단순히 권위있는 가르침을 주는 선생이 아닌, 메시야이자 구주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주님을 만나고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초월적 능력을 경험하자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만난 우리의 반응입니다.
여러분, 진리는 내 삶의 경험으로 체험될 때 진짜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피 흘리셨다.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여기까지는 교회에 다니는 어린아이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아니 교회 다니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도 알고는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머리로만 아는 것이라면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바로 날 위한 사랑이다. 그 사건을 우리가 진심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 삶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나의 진심과 만날 때 성령님께서 우리 내면의 변화와 기적을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는 나오지만 그저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무늬만 그리스도인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 명목상의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예수님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분이세요.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이, 그 진리가 내 삶의 적용될 때 우리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진리의 말씀에 반응할 때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이 더 이상 선생님이 아니세요.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나의 구세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사명을 발견합니다. 10절의 말씀입니다.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주님께서 사람을 낚는 제자로의 부르심입니다. 새롭게 우리의 삶을 정해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명입니까? 단, 조건이 있습니다. 즉시 과거의 삶에서 떠나야합니다. 과거의 가치관을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 후로는’이라는 말씀에는, 이제 앞으로는 과거와의 단절일 뿐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상당히 과격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반응도 놀랍습니다. 그 부르심에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지체하지 않고 즉시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두 배에나 가득한 물고기를 어떻게 했을까? 저는 궁금해요. 그런데, 베드로는 배에 가득히 잡은 물고기를 팔아서 자신의 삶을 채우는데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더 이상 그 물고기에 바라보지 않습니다.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베드로는 주님이 부르심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말씀에 지체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야할 만큼 가치가 있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고 믿길 원하지만 막상 주님의 부르심에 결단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다양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이 물고기만 다 팔고나서요. 나중에요, 지금 하는 바쁜 일 끝나면요. 이번에 옮긴 직장이 안정되면요. 이번 시험만 통과하면요. 새로 이사한 아파트가 다 정리되면요.” 갖은 이유와 핑계로 순종하지 못합니다.
믿음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는 거에요. 정말 믿는 사람은 순종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그 물고기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복과 성공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시는 이가 진정 누구인가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물고기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주님을 만났습니다. 바다와 물고기를 주관하실 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의 구주되시면 주인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배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 따릅니다.
여러분, 오늘 그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지금,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이 예배가 주님을 만나고 다시 시작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내 힘으로 내 인생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 우리는 주님을 진짜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새롭게 만나면 우리는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예배의 기쁨이 회복되고 성경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여러분,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주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존귀하신 예배배자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